줄거리-엄마는 강하고 바쁘다.
길복순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겟을 죽여야 돈을 벌 수 있는 킬러인데 어느날 그녀는 그냥 죽일 수도 있었던 타겟을 살려 두고 쓰러진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그에게 무기까지 줘가면서 공평하게 1:1로 붙자고한다. 일본의 전설적인 야쿠자인 타겟은 그냥 자기를 죽이지 않고 굳이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이유를 궁금해한다.
한 아이의 엄마인 길복순은 유명 정치인 아들의 입시비리를 다루는 뉴스를 보다가 그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 좋은 학교에 안 보내고 싶겠냐며 비리를 저지른 정치인을 이해하는듯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의 딸은 그건 공평하지가 않다고 하며 저 정치인의 아들을 대신해서 떨어지는 아이가 있을 테고 그게 만약 나라면 엄마는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한다.
그녀는 딸과의 대화 때문에 공평한 사람이 되기로 했는지 바로 쉽게 처리할수있었던 상대가 깨어나길 기다려 칼을 줬던것일까? 결코 만만치않은 실력의 그 야쿠자와 위험한 싸움까지 벌이지만 그녀에게 공평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딸아이의 식사였기에 싸움이 길어지고 어느덧 마트가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그냥 총으로 단숨에 타겟을 처리한다.
길복순은 이벤트 회사에 다니는 싱글맘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쉽지 않은 일상이지만 학모들의 학교 모임에도 나간다. 나름 거기서 아이의 교육에 대한 정보도 얻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테라스 가득 식물들도 돌보며 식사 준비도 직접해가며 십 대 딸아이와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살벌하게 잘 지내는 중이다.
이렇게 평범한 아줌마의 일상을 살아내는 킬러가 있나싶게 딸의 방에서 세탁할 옷들을 챙겨 나오는데 빨래더미에서 툭 떨어지는 담뱃갑으로 인해 기억 속에 있던 십대 시절의 자기 자신이 떠오른다. 길복순은 그 시절 아버지와 거실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우리 복순이가 비록 담배를 피우는 죄를 저질렀지만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화면은 그녀와 아버지의 옆모습을 비추다 그녀 얼굴 정면으로 옮겨가고 다른쪽 한쪽 눈과 입술이 다 터져있는게 보인다. 누가 복순의 얼굴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 상황에 아버지는 그녀에게 '자, 이거 먹어.'라며 담배를 건네는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담배를 먹는 벌을 주고 있다.
거실에 있는 사진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임을 알 수 있는데 저런 성정의 경찰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안 봐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고 그 사실은 어느 날 복순이 예정보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증명된다. 아이는 죽이지않겠다는 원칙이 있는 킬러인 차민규와 복순은 그날 복순의 집 거실에서 처음 만나는데 나름 원칙을 지키기위해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할 딸을 살려두는건 너무 위험 부담이 크다고 차민규가 고민하자 복순은 그의 고민을 덜어줬다.
그녀가 목격자가 아닌 민규가 목격자가 되도록. 열일곱 살의 복순과 킬러인 차민규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게 마련이고 그렇게 오랜 세월 많은 일을 함께 겪으며 지내온 그들에게도 끝이 찾아온다.
완성도
특별할 것 없는 기본 디자인이라도 좋은 원단과 사람의 몸과 움직임을 정확하게 잘 계산한 테일러링 그리고 꼼곰한 재봉으로 잘 마무리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비달 사순같이 고도로 숙련된 헤어디자이너가 잘라 준 완성도 높은 커트는 다 비슷해 보이는 스타일이라도 눈에 확 띈다. 아름답고 좋은 비율로 균형이 잘 잡혀 설계된 건물이 시공까지 잘 되어있으면 그 앞에 서기만 해도 멋진 기분이 드는데 이 영화는 완성도가 높아 그런 기분이 들게해준다.
그 어떤 분야든 훌륭한 주제에 좋은 소재가 있어도 완성도가 떨어지면 안타깝지만 수준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액션영화의 속도가 늘어지면 그것만큼 보기 힘든 것도 없다. 의외로 뒤에 비치는 배경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은 영화도 있는데 그런 영화를 보면 기분이 별로 살아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야기 전개에 속도감도 빠르면서 인물의 감정선도 놓치지 않고 집이나 건물의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도 보는 맛이 있다.
복순이 일하는 차민규의 이니셜을 딴 MK ent. 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외관을 가져와 CG와 합쳐 만들었다고 하는데 주변의 현대적 빌딩들이 즐비한 환경과 어우러져 클래식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주고 내부는 문화역사서울 284이고 복순의 집 인테리어 또한 꽤 잘 만들었다. 현재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결코 만만치 않아 너무 깊이 고민하게 되는 영화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럴때 가볍게 보는 영화라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완성도가 갖추어져 있었으면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