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현진은 출판사 편집장이다. 현재 싱글들의 도시라이프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편집하고 있다. 주제가 싱글라이프인데 글을 맡았던 작가 중 하나가 임신을 하고 하차하게 되자 출판사 사장인 진표는 새로운 작가를 섭외한다. 영호는 꽤 인기 많은 수능 논술 강사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논술은 주제만 파악하면 끝이다.'라고. 이런 영호는 '싱글 인 서울'의 작가로 글을 쓰게 된다.
주제 파악을 잘해서일까. 여러 번의 연애 실패 이후에 영호는 싱글의 삶을 택한다.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고 그동안 여자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드나들던 쇼핑몰의 적립금으로 스스로에게 선물을 한다. 혼밥을 먹으며 누구 눈치를 보고 맞춰줄 필요가 없어 편안함을 느낀다. 혼자 하는 그 삶을 사진으로 찍어 sns에 올리고 그는 꽤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영호는 현재 인류는 역사상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 의식주는 물론이고 교통과 통신까지 예전과는 비교불가의 시대에 살면서도 행복지수는 매우 낮은 아이러니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이유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그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지금 혼자 있지 않은 자는 모두 유죄라고 한다.
그의 첫사랑은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여자였다. 호텔 린넨실에서 일하며 둘은 쉬는 시간에 같이 책을 읽었다. 그런 그를 봐서일까. 그녀는 대학에 가고 싶어 했고 문예창작과를 지원한다. 그런 그녀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할까. 그에게는 제일 아픈 기억이 아닐까 싶다.
현진은 착각을 잘한다. 만나는 여러 사람들 중 지나가는 남자가 조금만 잘해줘도 심지어 옆 테이블 남자가 영수증을 접어 두고 나가도 혼자 막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자주 가는 서점 북마스터는 그녀가 출판사의 편집장이라 조금 잘해줬을 뿐일 텐데 그녀는 그가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데 쉽게 말을 못 꺼내는거라 생각하고 급기야 자기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도 된다며 용기를 내라고 톡까지 보낸다.
그러던 중 영호는 현진의 편집팀 회식에 따라가게 된다. 그 술집에서 현진은 혼자 착각에 빠져있던 서점의 북마스터가 여자친구와 함께 온 것을 보게 되고 또 헛다리를 짚은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혼자 빠져나가보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런 현진의 사정을 알게 된 영호는 현진을 도와 함께 도망쳐 나온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게 묘한 기류가 흐르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편집팀은 '싱글 인 서울'의 작가인 영호와 '싱글 인 바르셀로나'의 홍미나 작가의 글에서 겹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의 피사체가 비슷한 종류이면 거의 비슷한 구도가 나와있고 심지어 첫사랑 이야기는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쓸 수 없을 만큼 닮아있다. 각자의 입장차이나 기억의 왜곡이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첫사랑이었던 것이다.
후기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혼자'에 대해 쓰려했지만 막상 '혼자'보다는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영호의 말이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인간에게 또 다른 인간을 온전히 다 견뎌내는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 이야기'가 생각났다.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는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서로의 온기를 나누기 위해 끌어안는다. 하지만 이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화들짝 놀라 아주 멀리 떨어진다. 하지만 또 금방 살을 에는 추위에 둘은 다시 안고 또 찔려서 놀라고 아픈 과정을 반복하다 이제 방법을 터득한다. 상대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앉지만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는 것이다. 서로 좋아해서 함께 했지만 결국에 사람들은 각자가 숨겨왔던 가시에 찔리고 미워하며 멀어지는 걸 반복한다. 그러다가 영호처럼 혼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그 적정선을 잘 찾아내 함께 지내며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싱글라이프로 아름다운 서울의 영상에 잘 담아내고 있다. 현진이 홍작가가 바르셀로나에 살게 된 사연을 읽을 때 편집실 창문으로 바르셀로나의 풍경이 스케치되는 장면이나 영호가 글을 쓸 때 글자들이 세로로 떨어지며 적히는 장면들이 참 재미났다. 영화가 마치 잘 만들어진 한 권의 잡지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무겁지 않고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이지만 배우들의 대사 한 문장 한 문장이 생각해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말들이라 보는 즐거움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