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이 영화에는 남녀 두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넷이 묘하게 스쳐 지나가며 세기말 홍콩의 거리를 오간다. 그 유명한 '사랑의 유효기간'을 통조림과 편의점 상품들에 비유하던 금성무가 나온다. 그의 쌍꺼풀 없는 눈은 지금 세대에서도 인기가 높은듯하다. 가발을 쓴 임청하가 사기를 당하는 마약상으로 나온다. 그들의 이야기에선 도시남녀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홍콩의 한 거리에 테이크 아웃 전문으로 보이는 식당이 있다. 이제는 듣기만 해도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California Dreamin'이 시끄럽게 흘러나오고 있고 경찰제복을 입은 남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비에게 오늘은 왜 혼자 있냐고 묻는다. 아비는 당신이 오자 모두 나갔다고 말하며 경찰 633의 전 여자친구가 남긴 편지를 전해준다. 그는 나중에 읽겠다며 그때까지 잠시 보관을 해달라고 한다. 사실 그의 전 여자친구가 편지를 맡겼을 때부터 끓는 주전자에서 나오는 스팀으로 봉투를 조심스레 열고 가게의 모두가 경찰 633이 여자친구에게 차이는 내용을 다 봤던 상태였고 편지 봉투 안에는 그의 아파트 열쇠가 들어있다.
야채를 사고 전기세를 내러 은행으로 가던 아비는 시장 야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던 경찰 633에게 부딪힌다. 왜 요즘 가게 주위를 순찰하러 오지 않냐고 묻자 경찰 633은 순찰조가 바뀌었다고 말하며 아비의 야채를 옮겨주겠다고 한다. 아비는 전 여자친구의 편지를 보내주겠다며 그의 주소를 묻는다. 여기서부터 그녀의 범죄가 시작되었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좋게 말해 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경찰 633은 여자친구가 떠난 후부터 그에게 빙의해 슬퍼하는 집안 물건들을 위로하고 있다. 비누에겐 왜 이렇게 홀쭉해졌냐고 마음을 다잡고 강해져야한단식으로 행주에겐 왜 이렇게 축 쳐져있냐고 울지 말라며 꼭 짜주고 인형들과도 수시로 상담을 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그런 그의 집에 아비가 드나들기 시작한다.
경찰 633의 아파트 문 앞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열쇠를 꺼내는 아비가 있다. 고무장갑은 지문을 남기지 않으려던 것일까? 참 치밀하면서도 허술한 그녀다. 그의 아파트를 둘러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경찰 633의 전 여자친구는 가끔 그의 농장 안에 숨어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온 그를 놀라게 해주곤 했었다. 혹시 여자친구가 돌아온 게 아닌지 집에 들른 그는 농장 앞에서 이제 그만 숨고 나오라고 말하다 자신이 한심한지 다른 방으로 향한다. 그러자 진짜 농장 안에 숨어있던 아비가 나오고 인기척을 느낀 경찰 633이 다시 돌아오자 그녀는 벽에 붙어 서있는다. 경찰 633이 고개를 돌려 벽을 보자 그곳엔 아비가 없다. 그는 마음이 허해 헛것을 본 것이라 생각했는지 집을 나간다. 벽 아래에 앉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아비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이불을 벗어던진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웃기는 장면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묘하게 설득이 된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렇게 아비가 그의 아파트에 몰래 드나들던 생활에도 끝이 찾아온다. 사실 그동안에도 아슬아슬 들킬뻔했던 일이 있었지만 그날은 아비가 이제 그만 놀고 가려고 문을 여는데 집 앞에는 문을 열려던 경찰 633이 서있다 둘이 딱 마주친다. 경찰 633은 다시 식당을 찾아오고 아비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내 상식으로는 자기 아파트에 몰래 드나들던 스토커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말이다. 경찰 633은 아비가 즐겨 듣던 California Dreamin'에 나오는 'California'라는 바에서 만나자고 한다.
후기
1994년 개봉당시 이 영화에 열광하고 홍콩을 여행했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홍콩에서 그때의 세기말 감성을 느낄 수가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홍콩섬의 평지와 태평산 사이 경사지인 미드레벨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이 영화 이후에도 많은 영화와 방송에 등장하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영화를 보면 사실 깨끗하고 화려한 홍콩보다는 더러운 뒷골목이나 바 위의 꾀죄죄한 소스통들이나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 보이지 않는 식당, 오래되어 낡고 좁아터진 아파트등 그다지 '그리운 감성'을 붙일만한 장면이 없는데 그토록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건 그만큼 영화를 잘 만들었기때문일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영화에서 정말 잘 만들고 잘 인용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음악이다. 마마스앤파파스가 1965년 발매해 이미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California Dreamin'은 이제는 이 영화를 더 떠올리게 하고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 또한 그때 홍콩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꼭 들어야 할 노래가 아닐까 싶다. 외롭고 흔들리는 그들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노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