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1960년대의 홍콩에 이런 주거 형태가 일반적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마치 우리나라의 옛날 마당 있는 집에 여러 가구가 세 들어 살며 마당의 수도를 공유하듯 이들의 아파트에는 주인집이 있고 세 들어 사는 가정에 각자 방이 있지만 주방에서 같이 요리를 하고 밥도 먹으며 생활한다. 그러니 당연히 매일 만날 수밖에 없고 남자와 여자의 배우자들이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그들은 외도를 하고 있었다. 장만옥이 연기하는 소려진과 양조위가 연기하는 주무운은 배우자의 가방과 넥타이로 인해 그 둘이 외도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렇게 장만옥과 양조위는 '지나가는 행인 1'처럼 그냥 '같이 세 들어 사는 다른 사람 중 하나'에서 상간녀의 남편, 상간남의 부인으로 서로를 보게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로 시작하는 김춘수의 "꽃"에서 알수있듯이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다. 상대를 특정하게 되면 그 상대를 보게 되고 알게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옆방에 세들어 살던 이름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으로 스칠 수 있었던 그들은 배우자들의 외도로 인해 서로를 강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둘은 애초에 잘 맞는 성격이었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니 빠져들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배우자들의 외도로 괴로워하며 시작된 관계라서 그런지 그들은 그렇게 막 나가지는 않는 듯 보였다.
영화의 후반부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 않다. 몇 년이 흐른 후였다. 장만옥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그 아파트를 찾아온다. 영화에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나오지 않는다. 집주인도 이사를 가고 아파트를 둘러보는 장만옥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양조위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 와있다. 그는 사원 벽에 난 구멍에 입을 대고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그의 마음을.
후기
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꽃처럼 가장 아름다운 시절, 가장 행복한 순간을 뜻하는 말이라는데 그게 그들의 화양연화라면 안타까움이 큰 이야기다. 양조위가 앙코르와트 사원에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하는 장면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적의 아름다움을 너무 잘 담아냈고 답답함과 어우러져 고상하고 품위 있게 보이긴 했다. 이 영화는 도덕적인 브레이크가 걸려있어 보는 내내 '당신들도 당신들의 배우자처럼 추해지세요. 뭐 어때요? 잘못은 그들이 먼저 했는데.'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있었다.
영화 속 장만옥의 패션-치파오
영화 속에서 장만옥이 입고 나왔던 여러 종류의 치파오는 중국의 전통 의상이다. 품이 훨씬 넓었던 초기의 옷은 원래 남녀 모두가 즐겨 입었다고한다. 넥라인은 보통 '차이나 칼라'라고 불리는 세워진 스탠드업 카라고 몸에 딱 맞는 형태로 바뀌었고 치마 부분에 옆 트임을 주어 움직임을 편하게 해 준 스타일이다.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 시대에 유행했던 옷으로 청을 세운 만주족이 입던 긴 옷에서 유래됐다. 그들이 이 옷을 즐겨 입는것을 보고 한족이 치파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 장식이 예전보다 많이 빠지고 좀 더 심플한 디자인이 되었고 다양한 색깔과 천을 이용해 만들기 시작했으며 소매와 치마 길이도 짧은 것부터 긴 것까지 다양하게 입기 시작했다. 장만옥이 입고 나오는 치파오가 이 영화 영상미의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좁은 골목이나 복도에서 몸에 붙는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이 천천히 걷거나 벽에 손을 짚는 장면은 이 영화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다.
장만옥은 1964년생으로 이 영화가 개봉한 2000년 당시에 36세였다. 1983년 19세에 미인대회인 미스홍콩에서 2위를 하고 1984년 '청와왕자'라는 영화로 데뷔를 했다. 현재는 공리, 양자경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꼽힌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데뷔 이후부터 쉴 새 없이 활동한 게 보이는데 2010년대 들어 좀 뜸해진다. 이유가 음악 때문인 듯한데 의외로 음악에 대한 큰 열정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열정에 비해 노래실력은 상당히 비판이 많았다고 하는데 굴하지 않고 그녀는 작사에 작곡 디제잉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