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장편소설 '향수'가 원작인데 나는 '향수'를 읽기 전 그의 단편소설인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좀머씨 이야기를 먼저 읽은 상태였다. 솔직히 모두 다 나에겐 그다지 와닿지 않아 '향수'도 서점에서 인기 있는 책들이 올라있는 선반에 있었지만 처음엔 썩 내키지가 않았었다.
그러다 친구가 빌려줘 읽게됐는데 밤을 새우며 단숨에 다 읽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고 그 다음엔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제발 그르누이가 단 한 번이라도 사랑받고 사랑을 주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일평생 단 한번도 사랑받아보지 못한 그는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모르고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자기가 끌리던 향기를 따라 그 향기를 얻기 위해 본능적으로 움직였을 뿐 사악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연쇄살인범이 되었고 그의 죄는 너무 크지만 그의 출생부터 어린시절, 살인범이 되기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쭉 따라가다 보니 그의 죄보다는 불쌍함에 더 공감하게 되었고 그의 결핍에서 오는 집착에 설득이 되는 것 같고 한 인간이 태어나는 그 시점부터 자라나는 과정에서 양육자에게 받는 사랑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되는 글이었다.
예전에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읽었을 때 훌륭한 예술을 위해 예술가의 광기를 일부 묵인해줘야 할 것처럼 쓴 부분에서 실망도 컸고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 '향수'의 그르누이에겐 조금 다른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고 나는 정말 육아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더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아 육아서적에 나오는 것처럼 잘 키우진 못해도 적어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따뜻함을 느끼게는 해주고 이 사회와 어울리게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었다. 그래서 태어나 단 한번도 그런 보살핌을 못받고 그렇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 그르누이에게 단호함보다는 안타까움이 컸던것같다.
줄거리
그 시절 파리의 길거리에는 악취가 진동을 했다. 파리뿐 아니라 대부분 유럽 도시가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예전 유럽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게 된 이유가 집에서 요강 같은 것에 볼일을 보고 그 내용물을 길거리에 그냥 버리곤 해서 길에서 옷을 버리지 않기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필요했기때문이라고한다. 양산이나 우산을 꼭 챙긴 이유도 2~3층에서 버리는 오물에 옷을 버리지않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사실이라면 정말 악취가 어마어마했을것같다.
하물며 생선을 파는 시장은 어땠을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요즘처럼 냉장고가 있는 시절도 아니니 가히 상상할 수 없는 악취가 진동했을듯하고 바로 그 생선 가판 아래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부산물들 사이에 버려진 장밥티스트 그르누이가 처음 맡게된 냄새는 엄청났을것같다. 그의 엄마는 파리의 어느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여자였고 생선배를 가르다 산통이 느껴지자 가판 아래에서 아이를 낳아 그냥 그곳에 버려두고 다시 일어서 생선을 팔 기 시작하는데 늘 그래왔듯 아기는 가판 아래 쓰레기와 함께 버려질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갓 태어난 그르누이의 코로 온갖 냄새가 흘러들어 갔고 아기는 냄새를 맡다 울음을 터뜨리는데 시장에 있던 사람들은 울음소리를 따라 그르누이를 찾아내고선 그의 엄마를 고발한다. 그의 엄마는 살인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고 홀로 남은 그르누이는 고아원으로 보내진다. 말을 하지않아도 느껴지는 그의 괴이함으로 고아원의 그 많은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그르누이에게 말을 걸지않았다. 그르누이에게는 이상하고 가까이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었다.
그르누이는 다섯 살까지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이 점이 그가 얼마나 무관심 속에 외롭게 자랐는지 알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다보니 냄새를 구별하고 알아내는 능력에 더 집중할수있었고 그 능력으로 세상을 알아가게되었다. 그르누이가 13살이 되자 고아원 원장은 가죽을 다듬고 염색하는 공장에 그를 팔아버리는데 그 공장은 새로 들어온 사람이 몇 달도 안돼 죽어나가는 열악한 환경이었음에도 그르누이는 묵묵히 시킨 일을 하며 그 힘든 환경을 다 버텨낸다.
어쩌면 그르누이는 태어날 때부터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아본 적이 없고 관심이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본적이 없어 그 거칠고 험한 일도 그냥 견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를 위로했던 건 간혹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나 어쩌다 맡게 되는 좋은 냄새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유일한 행복이었던 좋은 냄새 즉 향기에 집착을 하게 됐는지도 모르는데 어느 날 그르누이는 향수가게로 가죽을 배달하러 가게 된다. 당시 파리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향수 냄새를 맡게 되고 한참을 그 향기에 취해있다가 우연히 길을 가던 젊은 여인에 향기에 또 이끌려 따라가게 된다.
그녀는 자두를 팔고 있었는데 그녀에게서 나는 모든 냄새에 그저 이끌려 따라가던 그루누이는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녀를 죽이게되고 그녀를 죽인 사실보다 그녀에게서 나던 좋은 냄새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 괴로운듯했다. 그러다 그는 다시 다른 향수가게로 심부름을 가게 되고 거기서 우연히 향수를 조제하게된다. 이제는 한물간 그 향수가게 주인은 가죽가게에서 심부름 온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반신반의하며 향수를 조합하게 한번 놔둬본 건데 놀랍게도 그건 지금 파리를 휩쓸고 있는 다른 가게의 향수보다 더 훌륭한 것이었다. 향수가게 주인은 가죽공장에 돈을 지불하고 그르누이를 데려오고 그르누이 덕에 큰돈을 벌게된다. 하지만 그르누이는 자두를 팔던 소녀에게서 나던 향기를 간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는 그런 방법을 배울 수없음을 알게 되고 그라스로 떠난다.
그르누이는 그라스에서 향기를 모아 간직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게 된다. 예전 자두 팔던 소녀에서 났던 향기처럼 여자들에게서 나는 좋은 향기를 모으려하면서 연쇄살인마가 되고만다. 마지막에 결국 잡히고 나서 그의 재판이 열리는 부분은 영화 개봉당시 논란거리가 되었던 유명한 장면이 된다. 화제가 된 건 그 장면이지만 나는 그의 마지막이 기억에 더 남는다. 재판장에서 걸어나온 그는 결국 그가 태어난 시장에서 생을 마감하는데 그건 타살이지만 자살이었다. 그 자신 그 자체로는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 아니면 자신이 원했던 모든 걸 다 이루어서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건지는 모르겠다.